아주 옛날 이야기를 해 볼까 ... 25 (베스트트랙 1996)

양원석 2025.03.19 22:27:36

1996년 K리그 시즌은 새로운 규정이 적용되는 해였습니다.
그건 '외국인 골키퍼 출전제한' 이 시작된 해입니다.

동대문시절 일화의 마르셀(루마니아) 선수로 시작한 외국인 골키퍼는 2호인 사리체프(신의손)의 입단으로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사리체프는 입단하자마자 꼴지였던 일화를 K리그 3연패(요즘은 NBA의 감독 펫 라일리가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쓰리핏" 이라는 말을 쓰데요?)시키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와 아프리카 챔스 우승팀까지의 경기를 승리하는 등. 꼴지팀을 갑자기 K리그 최고팀으로 바꿔놨습니다.
이걸 본 다른 팀들도 수많은 외국인 골키퍼들을 들여왔습니다.

유공도 모스크바 토르피도 팀에서 사리체프와 번갈아가며 골문을 지켰던 알렉세이 포드쉬발로프(등록명 : 사샤) 가 주전을 차지했고 심지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선수까지 한국에 와서 K리그의 골문을 지켰습니다. 얼마나 이때 심각했냐면 K리그의 팀 중 단 한팀, 현대만이 한국인 골키퍼였고 모두 외국인 골키퍼가 주전자리를 차지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한명이 김병지 입니다.

이러다보니 지금 광주의 GK코치인 주용국 선수는 일화에 있는 동안 한경기도 못나가고 사리체프의 연속경기 출장의 그늘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은퇴 이야기까지...(결국 수원으로 이적했지만 경기기록은 없는걸로 압니다)
이렇게 되면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골키퍼가 국대를 지키는 일이 발생한다는 위기감이 나와 지금 연맹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외국인 골키퍼 등록금지]가 생긴 해가 1996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디다스컵에선 부천은 주전 골키퍼인 사샤(본명: 알렉세이 포드쉬발로프)가 나서지 않고 이용발 선수가 모든 경기에 주전으로 나섰습니다.
이건 당시 있던 '외국인 골키퍼 선수는 시즌 경기의 2/3 경기만 출전 가능하다'는 것을 이용하려 한 것입니다.
(1996은 2/3 출전가능, 1997은 1/2 출전가능, 1998은 1/3 출전가능. 사실상 1996년을 대비기간으로 주고 1997부터는 외국인 골키퍼 쓰지 말라는 거였죠)

아디다스컵은 리그가 아니니까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본게임인 리그에서는 모든 경기에 사샤를 주전으로 세울수 있다. 는 것이 다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디다스컵에서 사샤는 후보였습니다만... 과정에서 가끔가다 사샤는 후보도 아닌 때가 있었는데 그때엔 언제나 응원하는 우리들 뒤편에 앉아서 경기를 보곤 했습니다.
(이게 다른팀도 비슷해서 경기 있는날 출전하지 않는 외국인 선수들이 관중석 한켠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본부석쪽 말고 다른 곳에서요)
그래서 신동일 선생님께서 영어로 인터뷰를 따신 적이 있습니다.
서포터가 선수에 대한 인터뷰를 따낸 첫 사례가 이때였습니다.

다행히 사샤는 영어를 어느정도 했고, 관련해서 신동일 선생님과 짧지만 밀도있는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이걸 정리해서 올려주셨고 골키퍼 입장에서 외국인 선수의 입장에서 K리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또 알게 된 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아디다스컵은 부천의 우승으로 끝났습니다.
8경기에서 5승 2무 1패라는 성적이었습니다.

마지막 경기인 포항과의 경기는 우승을 가리는 경기였습니다. 부천은 비기는 것 이상이면 우승이었고 지면 포항의 역전우승이었습니다.
결과는 고 윤정춘 선수의 결승골로 부천의 우승.

이때 위닝 런 이후 관중석에 있던 서포터들이 경기장 트랙에 내려가서 기념사진도 촬영했습니다. 아마 올드팬 분들 중 몇분은 이 사진을 가지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얼마전에 촬영한 30주년 관련 기념 다큐영상에서의 사진 보드를 보니 이때 사진이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진짜 오랫동안의 추억이...이렇게 있네요"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다시 그때가 생각나더군요. 플래카드 한 편을 들고 어찌어찌 사진 가운데에 서서 선수들, 감독님과 같이 사진 찍고 이야야 하고 소리 질렀던...

이렇게 시즌 시작부터 우승을 하게 되니 기분이야 하늘을 찔러댔습니다.
그리고 1996년은 이른바 '목동은 골 터지는 곳'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니폼니시 감독님이 추구한 축구중 '가장 공격적으로 진행한 해'가 바로 이때였습니다.

지금도 경기장에서 볼 수 있는 올드팬들 중 몇몇분은 이 해의 기억을 아직도 가지고 계실 겁니다.
너무나도 신났던 때로요.

이길 때 보여주는 상대를 압도하는 퍼포먼스, 상대를 농락하기까지 하는 여러 모습들은 축구를 아는 사람들,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도 경기를 볼 때 확실히 알수 있는 모습들이 여럿 보였습니다. 골을 넣을 때만 좋은게 아니라 경기 꾸며가는 것들을 보며 '와아! 이게 뭐냐?' 했던게 한두번이 아니었거든요.

어느정도였냐면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기록한 그 20번이 넘는 패스를 받고 만들어낸 골 있죠?
그거 본 올드 K리그 팬들은 별 감동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도 그 골 보면서 웅? 뭐가? 이랬는데 인터넷 여기저기서 '그거 2X번의 패스동안 한번도 안끊기고...'운운하길래.

"내가 니폼니시 부천때 경기 직관을 많이 했잖아. 그런거 자주 봐서...별 생각 안나던데?"

라니까 황당해 하는 분들 많았거든요.
근데 나중에 아는 K리그 올드팬 분들이 저에게 알려주셨는데...저와 똑같은 생각을 가졌더라구요.
저에게 '야 너두?' 이러더라구요...그냥 웃었습니다.
그때 부천이 하던 축구가 수준높은 축구였구나...하고요.

그만큼 1990년대 중반에 짜임새있는 축구를 보여준게 이때였습니다.
지금도 몇몇 인터넷의 글귀나 위키에 '당시 유공의 미드필드진은 K리그 최고'라는 글이 자주 나오는게 이때 이들이 보여주는 패싱플레이가 너무 엄청났기 때문이에요.
이른바 '부천유공 경기는 지는 경기라도 표값이 안아깝다'부터 감독들이 인터뷰중에 '경기는 우리가 이겼지만 부천유공의 미드필더진의 플레이는 경기를 지배했다.' 등등의 이야기가 나온게 바로 이 해부터였습니다.

당시 플레이를 봤던 관중들 중 인터넷/넷상에 글을 쓰던 사람. 기자들이 남긴 그 말과 그 당시의 증언들, 그리고 그때 뛴 선수들이 지금 감독이 되서 보여주는 철학과 축구들을 통해 그때의 일부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이 축구가 얼마나 극찬을 받는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죠.
그래서 '부천의 목동시대'는 한국 축구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반드시 한 장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팀을 응원하던 사람들이 'THE ORIGINAL SUPPORTER' 인 우리입니다.

이때 경기를 같이 본 어린 친구들은 이제 30대, 40대가 되었고 더 나이 있는 사람들도 있네요. 저도 50대입니다.
어떤 형태로던 경기장에 있고 싶고 응원하기 힘들더라도 서포터 석에서 약간이라도 응원 목소리를 보태고 싶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2019년에 극적으로 플옵 진출할 때 하얀색 와이셔츠 입은 채로 응원에서 날뛰는 모습이 방송으로 박제된게 저입니다만...
지금은 그렇게 하라면 힘들어요...ㅎㅎㅎ

그래도 아시겠지만 경기촬영을 하면서 우리팀이 골 넣고 이기면 양팔을 번쩍 들고 펄쩍펄쩍 뛰고 하는거 아실 겁니다.
그만큼 팀에 대한 애정이 쌓인게 1996년 아디다스컵이었습니다.
진짜 제 축구관전 인생에서 '최고의 해, 최고의 베스트트랙'을 이야기 하라면 전 두말없이 1996 시즌을 꼽을 겁니다.
축구가 이렇게 아름다울수 있구나. 하는 걸 내 눈으로 본 경기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아디다스컵이 끝난 뒤엔 구단에 직접 요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선수단 숙소 견학해도 될까요?"

...니가 간뎅이가 부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