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단 숙소, 훈련장을 방문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유공구단에서는 혼쾌히 허락해 주었습니다.
위치는 인하대학교 근처의 유공 저유소 안에 있다고 미리 이야기 해 놔야 한다 했습니다.
국가중요시설이라 경비가 쎄다고 했습니다. 석유저장시설이다보니 그렇더군요.
서울의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옆에 있는 문화비축기지처럼 석유저장시설이기 때문에 당연한 거였습니다.
지금처럼 길찾기 어플 같은 게 없던 때였기에 물어물어서 가야 했습니다.
제물포 역에서 내려서 버스 몇번을 타고 가면 근처에 내려준다면서 거기서부터 찾아가라고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대로 가니 넓은 6차선 도로를 가진 입구가 나오더군요.
입구의 경비초소에 가서 신분증을 맡기고 ID카드를 받았습니다. 그 뒤 어디 가는지 행선지를 방명록에 적고 서명한 뒤에 들어가는 시간을 적었습니다. 나중에 나올 때에는 신분증 찾고 나가는 시간 적었고요.
"이 길 쭉 따라가신뒤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세요. 그 길 계속 따라가시면 축구장 보일거에요. 거기에 축구단 숙소 같이 있습니다."
차없이 온지라 걸어걸어서 한 10여분을 걸어갔습니다. 연습구장이 나왔습니다. 안내받은대로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도 경비는 있었지만 미리 안내 받았다면서 아직 선수단 훈련 시간이 아니라고 알려주시더군요. 1층은 식당과 미팅룸이 있었고 2층이 숙소였습니다.
숙소에는 가지 않았고 1층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니포 감독님이 오셨습니다!
전 깜짝 놀라서 얼어붙어 있었는데 그분도 들어오시면서 깜짝 놀라시더라구요!
마침 강창석 통역하고 같이 오셨는데 강창석 통역님도 깜짝 놀라셨습니다만 바로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 어서오세요~! 오신다고 이야기 들었어요.
"구단에 부탁했습니다. 허락해 주시더라구요. 선수들 훈련하는거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 훈련이 궁금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어떻게 훈련했기에 그런 멋진 축구가 가능한지 정말 보고 싶었어요"
이걸 감독님께 통역해 주셨습니다. 제 뜻을 들으신 감독님은 활짝 미소지으면서 뭐라뭐라 하셨습니다. 통역을 들으니 이러셨대요.
"언제든지 오세요, 환영합니다. 축구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냥 황홀했습니다.
프로레슬링의 유명한 선수인 안토니오 이노키가 풋내기 시절에 미국에서 뛸 때 시합을 끝내고 나오니 전설적인 선수인 루 테즈가 어깨를 툭 쳐주면서 격려의 말을 건냈을 때 혼이 나갔다고 하죠. 대선배를 넘어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전설이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해 줘서 너무 좋았다고. 제가 니포감독님에게 그 순간 받은 느낌이 그거일거 같아요.
월드컵 8강, 그것도 아프리카팀 최초의 8강을 이끈 전설적인 감독님이 내 앞에서 이런 말을 해 주시다니.
그날 감독님과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지금도 없을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날 내가 뭘 하고 왔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걸어 나오는데 땅거미가 지고 있었던 것만 기억납니다. 그리고 나오는데 감독님 자가용도 만났습니다. 손인사 해 주고 헤어졌습니다.
기억력 그리 좋다는 놈이 그날 그럴 정도로 혼이 나가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구단에다가 "또 가보고 싶다. 배우고 싶은거 너무 많다. 잔디구장도 너무 좋아서 정말 많은거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뭔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날 정도였거든요. 다행히 부천유공 구단은 OK해 주셨습니다. 다만 경비실엔 잘 이야기 해 놓으라고...ㅎㅎ
그때부터 제가 또 다른 축구를 배우게 된 거였습니다.
두번째 갔을 땐 니포 감독님과 영어로 대화를 해 보려 시도했는데 잘 안됬습니다. 니포 감독님이 영어는 능숙하지 않으셔서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감독님은 미소지으시면서.
"Let's Wait, my translation come in"
이라고 해 주셔서 강창석 통역이 오신 뒤에 질문, 답을 하는 식으로 가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윤정환을 플레이메이커로 쓰는데 부담은 없나요?
"난 윤정환에게 플레이메이커를 맡긴 적이 없습니다. 그는 너무 뛰어난 선수에요. 자기가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최전방에 세울수도 있고 후방 스위퍼를 맡길 수도 있습니다. 난 그에게 공격에 전담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할 일은 윤정환이 만들어가는 공격을 잘 하기 위해 어떤 성향의 선수들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겁니다"
- 그럼 부천유공은 4-4-2포멧을 어떻게 구성하나요?(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부천유공의 포멧을 4-4-2로 쓰던 시절입니다)
"그렇게 해 본적은 없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린 그런 방식으로 구성하지 않습니다. 음...만든다면 4-3-3이라 해야 하나? 그렇게 축구는 간단하지 않아요. 선수 각자에게 부여한 임무를 묶다보면 3가지 유형으로 크게 묶으면 그렇게 될 수는 있지만 그 숫자에 묶이면 안됩니다. 선수들은 잘 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어요. 난 선수들이 잘 하는 것을 묶어서 팀을 강하게 만들려는 겁니다. 그게 우리 팀의 방향입니다. 숫자로 묶어서 고정관념으로 이야기 하면 안됩니다."
- 저에겐 새로운 시각입니다.
"그런가요? 지금의 축구는 많이 발전했습니다. 서로가 잘한다면 언제나 게임의 결과는 0:0 이 나옵니다. 점수를 내서 이기기 위해선 상대의 어딘가를 잘 공략해서 상대가 실수하게 하던가 우리가 유리함을 계속 가져가야 하는 겁니다. 그게 게임의 기본이죠"
- 유리함을 계속 가져가려면 어떡해야 하나요?
"부분 부분마다 상대보다 앞서야 합니다. 그 전제조건은 같은 공간(스퀘어) 안에 상대보다 우리 선수의 숫자가 많아아죠. 이게 압박의 기본입니다. 우리나 상대나 이 압박의 어떻게 잘 하느냐. 어떻게 잘 벗어나느냐. 여기서 승부가 갈립니다."
이런 대화들을 했던 것이 두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이후 여러번 훈련장을 방문하고 그때그때마다 지난 경기에서의 아쉬움이나 잘 된 부분들을 이야기 했어요. 그리고 선수들 훈련하는 것도 미리 그 전에 '오늘 훈련의 브리핑' 등을 듣기까지 했습니다. 귀찮아 하셨을 법도 한데 니포 감독님은 그런 모습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으셨어요. 언제나 차분하게 답변 해 주셨고 제 짧은 생각도 나쁘게 이야기 해 주신적은 없어요.
'그것보다는 다른 시각으로 볼까요?' 하고 이야기 해 주시는게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괜히 '신사' 소리 들으신게 아니었습니다
이후 저녁시간엔 가끔가다 친해진 선수들이나 당시 조윤환, 최윤겸, 하재훈 코치와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도 하면서 여러가지를 배워나갔습니다.
제가 보는 축구에 대한 관점과 해석의 기본적인게 이때 배워나간 거였습니다.
1996년은 정말 저에겐 뉴턴이 말한 '기적의 해' 와도 같았던 때였습니다.
1996년엔 부천유공의 경기장 외에도 스포츠 서울의 체육1부에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몇몇 기사에 관여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1996년 K리그를 달군 기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