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이야기를 해 볼까...28 응원가 앨범 축국지몽

양원석 2025.06.20 21:02:10

축국지몽


요즙 갑자기 응원가 문제가 이야기 나오다보니 응원가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1980년대 축구장에서야 응원가는 너무 뻔했습니다.
노래 몇개, 유행가 몇개 부르는게 다였거든요.
치어리딩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아마 1980년대의 치어리더들이 지금 야구장에 가면 그 자리에 서지도 못하고 '치어리딩이 이리 빡센거였음?' 이라 할지도 모릅니다.
아 물론 당시 미국 대학교 치어리딩팀은 차원이 달랐지만 한국에서도 그정도 까지 되는 퍼포먼스는 치어리딩팀에서도 보기 어려웠습니다.

서포터도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여러 노래들을 사용하긴 했고 구호나 음을 따라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독자적인 리듬은 바로 나오진 않았어요.
이런 부분은 당시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부르기)라는 문화에서 시작되었다고 볼수도 있겠습니다만...원어를 그대로 부르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었으니까요.
이 부분은 분명 한국보다는 일본이 앞서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을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정작 '노래'를 들여오는게 쉽진 않았습니다.
결국 하이텔 축구동호회 회원분들 중 해외 많이 다니면서 이런 음악이 들은 CD를 사온 분들 몇이 나섰습니다. 앞서 말했던 일본통 박철효형님이 많은 음반을 가지고 계셨죠.
요즘같음 이런 음악들을 유튜브에 올리거나 축구동호회 자료실에 올려서 공유하고 했을텐데 당시는 이런게 쉽지 않았습니다.
컴 잘 다루는 사람 아님 이거 쉽지 않았고 음악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아님 음원 추출은 집에 컴이 있어도 쉽지 않았어요.
요즘 PC들은 메인보드에 사운드카드가 내장되어 있고 이 내장 사운드카즈의 성능이 꽤 좋습니다. |
그때는 컴에서 나는 소리는 비프음(삑~ 삐이~ 삐빅~ 하는 소리요... 이거 메인보드 에러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몇번 울리냐에 따라 어디 문제인지 아시는 분들은 진짜 PC박사임)이 전부였고 WAV들으려면 최소 일제 사운드마스터나 국산 '옥소리'카드나 지금도 유명한 '사운드 블러스터' 카드를 추가로 달아야 했습니다. 물론 10만원 넘는 비용을 따로 들여야 했고 세팅까지 해야 하는 거였죠.

그러다보니 하이텔 축구동에 그림이나 사진자료는 좀 올라왔어도 대부분은 텍스트 자료였습니다.
결국 저는 축구협회에 입사한 하이텔 축구동 회원인 송기룡 형님(국제부 차장까지 하셨다가 얼마전 정년퇴직하셨습니다)께 부탁해서 A매치 하면 경기 전에 트는 FIFA Anthem 3곡(원본 1곡+변주 2곡)을 테이프에 복사해 주셨습니다.
이걸 제가 집에서 테이프의 AUX단자로 컴퓨터의 사운드블러스터 카드에 연결시켜서 WAV파일로 변환한 걸 올렸는데 인기가 좋았을 정도였죠.
왜 MP3 파일로 안올렸냐고요? ... 그땐 MP3 이 없던 때였습니다. 허허허허.
있어봐야 MP2 있던 때였습니다. MP3은 1997년 말. 그러니까 도쿄대첩 지난 뒤에야 이거 한국에서 MP-Man 이라는 MP3 플레이어가 발매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도쿄대첩 이전엔 MP3으로 못올렸죠 ㅎㅎ

어떻게 이 노래들을 알릴까 하는 명제에 대해서 움직인 건 신인철 형이었습니다.
곡들을 모아서 선정한 다음에 이걸 당시 리어카에서 파는 '인기가요 TAPE'처럼 묶어파는 테이프를 만들어서 회원들에게 실비만 받고 보급해보자! 는 거였습니다.
일본통 박철효님이 음반들을 제공해주셨고 선곡 등에도 참여하신 걸로 압니다.
박철효 형님은 이후에도 보면 이런 부분들에 참여하셨습니다.
(흔히 '다구리 송' 으로 알려진 2002년 붉은악마의 음반의 첫곡인 [Into the Arena] 의 이름은 바로 박철효 형님이 지은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 테이프 음반의 이름은 

'축국지몽'(蹴鞠之夢)

으로 결정했습니다. 이런저런 이름들이 나왔지만 축구의 오래전 이야기인 '축국'집어넣고 '꿈' 이라는 말을 넣은 걸로 결정되었습니다.

음악테이프 자체는 신인철 형이 아는 곳에서 만들어 오셨던 것 같았습니다.
표지작업은 제가 했습니다.
표지작업을 놓고 고민하다가 '축구의 꿈'은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해 가야 한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구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니까요.

그런데 제가 그림은 잘 그리지는 못해서 미래는 나중에 다른 디자이너가 도와준다면 그분에게 맡기면 된다는 생각은 했지만 일단 빨리 만들어서 보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현재 를 급하게 하기로 하고 인철형에게 "베스트일레븐(이 당시엔 '월간 축구' 였습니다)에서 발간한 '한국축구 100년사' 라는 책에서 그때까지의 [한국축구의 중요한 장면 10장]을 꼽아서 스캔하고 수록곡 목차. 그리고 거기에 대한 짧은 설명만 넣어보자"는 안을 이야기 했고 인철형은 'ㅇㅇ 니가 맡아서 만들어봐라!' 라고 하셔서 그냥 하룻만에 만들었습니다.
이때 포토샵 기능이 지금과는 다를 정도로 엄청 떨어졌기 때문에(무려 버전 2.0 시절입니다...-_-;;;) 그림에 직접 식자 넣는게 좀 애매했던 때입니다. 왜냐고요? 이때 포샵에서 레이어 기능 없던 때였어요!!!! 포토샵 좀 다뤄보신 분들이라면 '네??? 레이어가 없었다고요?' 라고 하실지 모르겠는데...없던 때입니다...-_-;;;
그래서 사진으로 테이프 박스의 속지를 디자인 할 때 '한국축구의 중요한 장면'을 원본보다는 살짝 흐리게 만들어서 프린트 출력을 했습니다. 이러니 위에 글자 씌워져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식자를 ... HWP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뒤 사진 한번 출력하고 그 용지를 그대로 넣고 또 HWP 출력해서 배경 위에 글자가 들어가게 프린트하는 방법으로 속지를 만들었습니다.
이거 위치 맞추고 사진과 글자가 겹쳐서 가독성 떨어지면 다시 글자의 크기/위치-사진의 밝기-컨트라스트 조정해서 다시 뽑아서 또 확인하고 맘에 안들면 다시 또 조절하고를 반복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이런 노가다 안했을텐데 그땐 그랬습니다. ㅎㅎ
충무로 인쇄소 가서 이야기 하면 순식간에 해 줬겠지만 돈이 없이 최대한 돈 아껴서 단가 낮춰서 보급해야 한다는 것이 먼저였으니까요. 돈 최대한 아꼈습니다.
속지와 카세트를 합치는 작업은 제가 운영했던 대학로의 '카페 칸타타' 3층에서 했습니다. 이땐 제가 OS동호회에게 카페를 넘기기 직전이었습니다.
투박하긴 했지만 한국 최초의 '축구장에서 불리는 음악 모음집'이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이 작업은 계속해서 이어져서 2002년의 '붉은악마' 음반이 만들어지게 된 초석이 됩니다.

당시 수록했던 노래는 GO WEST 가 대표적이겠네요. 다만 다른 것이라면 '울트라 니폰' 버전이었습니다.
이 버전이 상징적이었던게 초반 시작이 응원하는 소리와 함성으로 시작합니다.
'오오~ 쩔겠는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시겠습니다.
네 진자 쩝니다.

왜냐면 이 응원소리 음원이 1993년 10월 28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일본vs이라크 경기의 종료 직전의 응원 음원입니다.
네... 일본에서 '도하의 비극'으로 불리는 바로 그 경기요.
이걸 응원가 도입부분으로 썼습니다.

이 시간이 일본축구에 있어선 한 이정표로 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중의 일입니다만 2002년 부산에서 한 일본팬이 이날 날자와 92:50 이라 쓰여지고 그 시점에 멈춰진 시계를 등판에 새긴 티셔츠를 입고 있던 걸 봤습니다.
보면서 소름이 돋았을 정도입니다.

울트라 니폰 판 GO WEST는 '니폰!니폰!니폰!'하는 응원구호와 함께 함성으로 시작합니다. 그 함성은 우리편이 골을 넣어서 승리한다던가 하는 순간이 아닌 이라크의 움란 자파르가 2:2 동점골을 만들면서 일본의 본선 진출을 막은 바로 그 시점의 응원소리입니다. 그리고 무거운 음이 흘러나오다가 '이날로부터 다시 도전한다'였던가? 뭐 그런 뜻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며 GO WEST 가 시작합니다.

노래 하나에도 이런 서사를 담고 있었던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응원가를 보급하고 우리도 이런거 하나 있음 좋겠다. 하는 맘을 가지고 있던 것이 1996년 1997년 그 즈음이었습니다.
그 노력에서 나온 결과들이 이후 우리가 보는 현재입니다.